추천 2등급
네 개의 계절, 네 개의 잔
전시 소개
재 너머 성권롱 집에 술 익는 내음 난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벗 없으면 못 마시리 벗 와서 함께 마시면 천년을 살 것 같네 — 정철(鄭澈) 조선의 선비들은 홀로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벼슬을 버리고 산중에 거처를 두거나, 강 위에 배를 띄우고 혼자 달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안빈낙도(安貧樂道)였다. 세속의 소란으로부터 몸을 거두어, 자연과 단둘이 마주하는 그 고요 속에서 시조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과거에 즐기던 풍류였다. 자연은 그렇게 대화의 상대였다. 그러나 정철은 술을 마시는 일에서만큼은 자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노래한다. 술을 나누며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정취를 느끼게 하는지, 또 어떤 깨달음을 가져다 주는지, ‘함께하는 이’는 그런 것들을 선명히 한다. 전시 《네 개의 계절, 네 개의 잔》는 시조 속 화자가 바라던 바로부터 시작한다. 권소영, 문기전, 이지영, 세 명의 작가와 홍인 갤러리 대표, 네 사람은 함께 자연으로 들어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번에 걸쳐 같은 장소에 몸을 두고, 같은 시간, 같은 빛과 바람을 통과했다. 술 익는 내음이 나면 함께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고, 때로는 말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 풍경 안에 머물렀다. 홀로 외로이 벗을 기다리던 시인이 끝내 도달하고자 했던 자리에 이들은 함께 있었다. 자연 앞에서 각자 느끼는 바는 고유할 테지만, 누가 옆에 있느냐에 따라 그것은 또 다른 모양을 갖는다. 술자리에서의 말 한마디가 이튿날 붓을 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불편하지 않은 침묵이 새로운 감각을 열기도 한다. 그렇게 같은 계절을 통과한 네 사람의 화면은 함께 공유했던 순간을 담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접촉한다. 권소영은 바람과 빛이 자신 안으로 스며드는 시간을 기다리며, 이때의 감각을 먹의 번짐과 겹으로 표현한다. 문기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오감으로 포착한 감각들을 잔상으로 간직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화면 위에 되살린다. 이지영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누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사생하는 이들을 사생하고, 함께한 넷의 여행을 기록한다. 이미지가 균질해지는 시대다. 같은 장소를 방문한 사람들이 찍는 사진은 놀랍도록 비슷하고, 자연을 읽어내리는 방식조차 이미 수천 번 반복된 구도를 따른다. 그 안에서 같은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들이 전혀 다른 화면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것은, 각자의 감각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함께 놓인 작업들은 따로, 또 같이의 시간이 무엇이었는지를 드러낸다. (글 : 김민식)
모든 전시 정보에 대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전시 정보는 변경되거나 오기입될 수 있으니 방문 전 각 기관에 확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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