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가나아트 한남은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던 응(Dawn Ng, b. 1982)의 개인전 《The Earth Laughs in Flowers》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21년 가나아트 나인원에서 열린 《Into Air》 이후 5년 만에 국내에 다시 선보이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던 응은 지난 10여 년간 얼음을 매개로 시간의 흐름과 물질의 변화를 탐구해 왔으며,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이어진 대표 연작 《Into Air》에서는 안료를 얼려 만든 얼음이 녹아 사라지는 과정을 사진, 영상, 회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담아냈다. 형태를 갖췄던 얼음이 서서히 흩어져 사라지기까지의 흐름을 쫓은 이 작업은 생성과 소멸을 하나의 연속된 과정으로 제시하며, 덧없는 생을 시적으로 은유해 왔다. 《Into Air》에서 얼음이 사라지는 과정을 좇았던 작가의 시선은, 이번 신작에서 그 이후에 남는 물질의 흔적과 퇴적으로 옮겨간다. 그 변화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목판 회화다. 안료와 모래를 층층이 쌓아 만든 약 20kg의 얼음 블록을 나무 패널 위에서 깨뜨리면, 물의 흐름과 중력, 온도에 따라 서서히 녹아내리고, 그 과정에서 안료와 모래는 마치 화석처럼 굳어 강의 흐름이나 해안선을 연상시키는 지형의 단면을 만들어낸다.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한 종이 회화에서는 안료가 녹아 종이 섬유 깊숙이 스며든다. 작가는 종이를 적시고 말리기를 반복하거나 표면을 일부러 벗겨내, 안료가 계속해서 이동하고 스며들도록 유도한다. 여기에 얼음이 형태를 잃어가는 순간을 포착한 라이트박스 작업이 더해져, 이로써 하나의 사건이 그 이전과 이후까지 세 매체를 통해 겹겹이 기록된다. 이처럼 하나의 물질이 다른 상태로 이어지는 과정은 전시 제목이 함축하는 시간관과도 맞닿아 있다. 전시 제목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의 시 「Hamatreya」에서 가져온 구절로, 이 시에서 인간은 땅을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지만 결국 죽어 다시 그 땅으로 돌아가고, 자연은 그와 무관하게 계절마다 꽃을 피운다. 던 응이 이 구절을 삶과 죽음의 단절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가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과정으로 읽는다. 이번 전시 역시 시간관을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구체적인 물질의 변화로 풀어낸다. 목판 회화는 안료가 퇴적되어 형성된 지형을, 종이 회화는 물질이 스며들며 축적된 흔적을, 라이트박스는 그 모든 변화가 시작되는 찰나를 담아낸다. 《Into Air》가 소멸이 일어나는 그 순간과 삶의 무상함을 응시했다면, 《The Earth Laughs in Flowers》는 소멸 이후에도 물질이 다른 형태로 축적되어 새로운 풍경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간이 사라지는 방식을 좇던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마침내 그 사라짐 너머의 세계를 빚어내는 방식에 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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