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3등급

가 살아온 시간뿐 아니라 우리의 시간 또한 겹쳐지고: 2026 양평군립미술관 여름 기획전시 순간의 지층

2026.07.31 ~ 2026.09.27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문화복지길 2 양평군립미술관

전시 소개

《순간(瞬間)의 지층(地層)을 기획하며. 양평군립미술관 학예실장 이홍원 지금 이 순간은 지난 시간의 연속이 낳은 결과물이고, 지금은 곧 다음 순간의 과거가 된다.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으며, 지나간 모든 순간은 흔적이 되어 축적되고, 그 축적은 결국 역사가 된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며 살아간다. 하나의 선택은 또 다른 선택을 낳고, 그 연속된 결정들은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한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우리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사건과 시대의 흐름, 사회적 조건과 타인의 선택이 우리의 삶을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원하지 않는 현실과 마주하기도 하고, 준비되지 않은 순간 앞에서 선택을 강요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삶이라면 우리는 그 시간을 외면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상황 속에서도 끝내 하나의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 결정 역시 자신의 삶을 이루는 일부가 된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는 연속적인 점들의 집합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 속에 끊임없이 스며들며 미래를 생성하는 살아 있는 지속(dur?e)이라고 설명하였다. 그의 시간은 시계가 측정하는 객관적 시간이 아니라 기억과 경험이 서로 겹쳐지며 두터워지는 시간이다. 지금이라는 순간은 독립된 한 점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시간이 응축되어 현재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생성의 장인 것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역시 인간을 시간적인 존재로 이해하였다. 인간은 이미 지나온 과거를 짊어진 채 현재를 살아가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자신을 끊임없이 던지는 존재이다. 지금의 우리는 과거의 결과인 동시에 미래를 만들어가는 시작점이다. 따라서 현재는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서로 맞닿는 가장 밀도 높은 장소이다. 이러한 시간은 결국 삶의 지층을 형성한다. 사건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선형적 서사가 되고, 기억들은 서로 포개지며 하나의 층을 이룬다. 때로는 희열과 기쁨으로, 때로는 괴로움과 슬픔으로, 외로움과 고독의 흔적이 되어 하나의 선(線)을 이루고, 다시 켜켜이 쌓여 삶의 지층을 만든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oeur, 1913-2005)는 인간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구성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개별적인 사건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지만, 서로 연결되는 순간 하나의 서사가 되고, 그 서사는 곧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결국, 우리는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시간을 끊임없이 서술하며 만들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땅’ 역시 수많은 시간의 축적을 품고 있다. 거센 풍화와 침식, 화산과 비, 생명의 탄생과 소멸은 수만 년에 걸쳐 하나의 단단한 지층을 만든다. 그 위에 생명이 자라고, 다시 흔적을 남기며 새로운 층을 형성한다. 잘 가꾸어진 땅이 비옥한 옥토가 되듯, 인간의 삶 또한 기쁨과 상처, 실패와 희망, 만남과 이별이 오랜 시간 퇴적되며 하나의 존재를 만들어낸다. 동양의 사상가 장자는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변화 속에서 삶은 자연과 함께 스스로를 완성해 간다고 말하였다. 변화는 삶을 무너뜨리는 힘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는 생성의 과정이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순간의 토양이 되고,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깊은 기반이 된다. 《순간의 지층》은 바로 그 시간의 퇴적을 바라보는 전시이다. 작품 속에 남겨진 하나의 붓질, 물감의 겹침, 지워진 흔적과 다시 덧입혀진 표면은 단순한 조형적 결과가 아니라 시간이 물질 위에 남긴 기록이며, 삶이 스스로를 증명하는 흔적이다. 우리는 작품을 바라보며 하나의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밀도와 기억의 층위를 읽게 된다. 그곳에는 작가가 살아온 시간뿐 아니라 우리의 시간 또한 겹쳐지고, 서로 다른 삶의 지층은 하나의 풍경으로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처럼 삶의 지층은 결코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한 사람의 기억은 가족의 기억이 되고, 가족의 기억은 공동체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다시 공동체의 기억은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와 문화가 되어 다음 세대에게 전승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수많은 개인의 시간들이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며 형성된 거대한 지층이다. 따라서 개인의 선택은 언제나 사회와 분리될 수 없으며, 사회 또한 개개인의 삶이 축적된 결과로 존재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 역시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현실은 사회적 제도와 역사적 사건, 정치와 경제,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인간 사이의 관계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결합하면서 생성되는 과정이다. 오늘의 현실은 어제의 선택들이 축적된 결과이며, 동시에 내일을 향해 다시 퇴적되는 현재이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인 동시에 현실을 만들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각 개인의 삶은 사회와 시대의 지층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삶은 눈에 보이는 세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억과 감정, 상실과 희망, 사랑과 그리움, 기대와 불안처럼 형태를 갖지 않은 수많은 현상들은 우리의 내면을 흐르며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예술 또한 이러한 비가시적 영역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드러내는 행위이다. 작품 속에 남겨진 색채와 질감, 흔적과 여백은 단순한 조형 언어가 아니라, 말로 설명될 수 없는 시간과 감정, 존재의 깊이를 담아내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된다.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은 자연과도 분리될 수 없다. 계절이 순환하고, 강물이 흐르며, 나무가 나이테를 남기듯 인간 또한 시간 속에서 흔적을 남긴다. 자연의 지층이 수억 년 동안 형성되었듯 우리의 정신과 문화 또한 오랜 시간의 축적 속에서 생성되고 변화한다. 결국, 인간의 역사와 자연의 시간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생성 과정 안에서 함께 호흡하는 존재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거나 현재를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순간이 어떻게 기억이 되고, 기억이 어떻게 삶이 되며, 삶이 어떻게 역사와 사회를 이루는지를 질문한다. 또한, 눈에 보이는 형상 이면에 존재하는 감정과 관계, 침묵과 부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까지 함께 사유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는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의 층위를 따라 걸으며, 각자의 삶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기억과 경험, 그리고 존재의 흔적을 마주하는 하나의 사유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작품을 바라보는 일은 결국 타인의 시간을 읽는 일이자, 동시에 자신의 시간과 마주하는 일이다. 그 만남의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이란 수많은 순간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만들어낸 하나의 깊은 지층임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관람료
성인 1,000원 / 청소년 700원 / 어린이 500원
운영시간
일 10:00-18:00
월 휴관
화 10:00-18:00
수 10:00-18:00
목 10:00-18:00
금 10:00-18:00
토 10:00-18:00
참여 작가
가 살아온 시간뿐 아니라 우리의 시간 또한 겹쳐지고
문의
양평군립미술관 031-775-8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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