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2등급
서지원 개인전 《궤적: 기억의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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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1. 포털(Portal) 건축학의 관점에서 ‘문’은 단순히 공간을 나누는 물리적인 벽의 일부가 아니다. 분할된 공간 속에 사용자의 동선과 선택적 의지를 투영하여 안과 밖의 출입을 유도하는 매개체다. 문을 통과한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등지고 전혀 다른 맥락의 세계로 편입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간의 전이는 상상력 속에서 ‘포털(Portal)’이라는 개념과 연결되기도 한다. 게임 속의 포털, 우주의 블랙홀과 웜홀은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전혀 다른 시공간을 현재의 좌표로 소환한다. 이 지점에서 문은 단순한 통로를 넘어 일종의 ‘변곡점’이자, 존재의 상태를 전환하는 순환의 고리로 기능한다. 작가 서지원은 자신의 신체적 체험을 통해 수집한 잔상들로 화면을 채운다. 그는 캔버스라는 평면 공간에서 일종의 변주하는 포털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조형적 파편들을 쏟아낸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은 화면 전체를 파악하기 위한 논리적 단서를 찾으려 애쓰게 되지만, 서지원의 세계에서는 작은 모듈이나 질서 정연한 구조보다 ‘잔상과 환영’이라는 개별적 경험의 충돌이 우선시된다. 그의 작업은 해석과 이해라는 이성적 접근을 거부한다. 대신, 가늠할 수 없이 먼 거리를 달려와 우리 눈에 닿은 밤하늘의 별빛처럼, 혹은 낮과 밤이 교차하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처럼, 가장 오래된 기억의 어휘들을 불쑥 내민다. 일인칭의 수행자 시점으로 변화하며 머릿속의 기억을 붙잡으려는 그의 시도는, 캔버스라는 문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포문을 열어내고 있다. 2. 표류의 면적 서지원은 이번 전시 《궤적:기억의 집합》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표류’하는 자신의 상태를 응시했다. 그가 발을 딛고 있는 세계 속에서 기억은 외부의 관계항들과 부딪히며 부유했고, 작가는 그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해 왔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부표, 그 위를 흩날리는 색과 면의 격렬한 운동, 그리고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은 그간 그가 겪어온 심리적 표류를 시각화한 것이었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 혹은 그 둘의 교집합 안에서 물리적 공간에는 존재하지 않는 자신만의 영토를 찾아 나서는 이인칭 탐험가의 시선이 그간의 주된 시점이었다. 그러나 ‘예술공간 의식주’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전의 여정과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더 이상 넓고 막막한 외부의 바다를 응시하지 않는다. 대신, 전시장이라는 ‘소박한 입방체’와 그 안의 ‘작은 공간’으로 시선을 돌린다.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이제 좁고 내밀한 공간 안에서 응축된다. 주목할 점은 이 고립된 작은 공간이 결코 폐쇄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서지원은 ‘1제곱미터’ 남짓한 아주 작은 표류 지점에서도 빅뱅과 같은 거대한 사건의 시작이 열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물리적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밀도의 문제다. 내일의 일렁이는 파도를 맞이하기 위해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 세계를 다시 구축하려는 작가의 태도는, 표류하는 부표를 하나의 단단한 섬으로 치환하고 있다. 3. 섬광: 감정의 궤적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섬광’은 감정을 대변하는 빛으로 은유 된다. 전시장 내부에 설치된 작업들은 풍경이나 오브제의 재현을 넘어서서, 특정한 기호적 형태가 삭제된 추상의 형태와 가깝다. 몇 해 전부터 그가 활용해 온 ‘스퀴즈(Squeeze)’ 기법의 면적이 확대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감을 밀어내고 압착하여 캔버스 위에 흔적을 남기는 이 기법은, 행위의 결말을 미리 상정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어제에서 내일로 흐르는 선형적 시간은 서지원의 화면 안에서 부유한다. 그러나 여러 좌표에 파편화되어 흩어져 있던 기억, 신체의 흔적, 그리고 사건의 단서가 ‘우연’이라는 가능성의 축을 중심으로 재배치된다. 작가는 인위적인 시스템이나 보편적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않는 ‘잉여의 이미지’가 탄생하기를 고대하며 항해를 멈추지 않는다. 그의 화면 속에서 솟구치는 ‘푸른 섬광’과 별의 무리는 창백하면서도 눈부시게 찬란하다. 이는 언젠가 도래할지 모르는 거대한 이야기를 위해 작가가 준비한 파편들의 향연이다. 그는 오늘도 자신의 영토 위에서 미완의 움직임을 관측하며, 가장 작은 것들로부터 가장 거대한 빛의 궤적을 그려내고 있다. 《궤적:기억의 집합》은 작가 서지원이 기억의 심해에서 건져 올린 잔상들을 어떻게 자신만의 영토로 편입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작가는 단순히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질량을 캔버스 위에 압착하여 새로운 시공간의 문을 만든다. 우리는 그가 만든 포털 앞에서 무수한 파편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문 뒤에서는 때로는 날카로운 비명이, 때로는 부드러운 별빛이 도래하지 않은 곳을 향해 궤적을 그려낼 것이다. 비록 삶이 여전히 표류 중일지라도,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이 항해는 각자의 잠 속에 깃든 섬광을 깨우게 될 것이다.
모든 전시 정보에 대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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