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덩어리 풍경》은 APOproject 칸델라브룸(Candelabrum) 프로젝트의 연장선이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한 칸델라브룸 프로젝트는 작품이 놓이는 위치와 공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칸델라브룸은 ‘매단 등’을 뜻하는 라틴어로, 샹들리에의 어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본 프로젝트는 벽면과 바닥이라는 익숙한 전시 방식을 벗어나 천장에 매달린 상태로 제시되는 작품들을 통해 전시공간 속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관객의 시선과 움직임 또한 새롭게 조직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고근호와 곽인탄의 작업은 모두 하나의 고정된 형상으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시각예술의 형식은 오랜 기간 조각과 회화로 굳혀져 있었다. 회화는 벽에 걸리고, 조각은 좌대 위에 놓인 채 감상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전시는 익히 아는 구성에서 비켜선 두 작가의 방식을 통해 회화와 조각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안한다. 고근호는 물질적인 요소를 조건으로 삼아, 천 위에 생기는 균열과 흔적의 흐름을 따라가며 작업을 전개한다. 그는 우연히 형성된 균열의 흔적을 따라 선을 긋고, 선이 만들어낸 형상 위 물감을 쌓아올린다. 그 과정은 목적지를 정해두고 나아가기보다, 산책하듯 화면을 더듬어가는 것에 가깝다. 이렇게 형성된 덩어리들을 마주하다가 기억 속 무언가를 떠올리면 조용히 별명을 붙여준다. 때때로 동물의 형상 같기도 하고, 실재하지 않는 영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나간 동선과 모양들로 이뤄진 화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기억의 조각들을 스스로 재구성하도록 유도하며, 각자의 이미지로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고근호가 마주했던 천의 주름, 균열 등의 형태는 작가의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 요소들이며, 이는 자연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돌출된 물감의 표면은 겹겹이 쌓여 있고, 회화는 더 이상 평면 위에 머물지 않는다. 선은 부피가 되고, 물감은 솟아오르며, 화면은 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곽인탄의 조각에는 수많은 정면이 존재한다. 여러 얼굴과 표정, 방향들이 한 몸에 공존하며, 각각의 얼굴은자신만의 시선과 표정을 드러낸다. 그들을 보는 위치에 따라서는 새로운 인상과 맥락이 드러나고, 하나의 얼굴은 금세 또 다른 표정으로 뒤바뀐다. 그는 점토를 손으로 주무르며 덩어리를 만들어간다. 무정형의 덩어리는 어느 순간 표정을 갖게 되고, 얼굴이 된다. 얼굴이 된 조각은 우리를 향해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눈은 다시 우리를 응시하며, 되돌려준다. 곽인탄의 얼굴들은 덩어리의 형태를 따라 계속해서 섞인다. 그의 조각은 이처럼 하나의 몸이 되다가도, 다시 각각의 개별적인 덩어리로 흩어진다. 기존의 조각들은 다채롭고 유기적인 조형을 통해 각각의 형상들이 지닌 개별성을 드러냈었지만, 본 전시에서는 색채를 통일하고 형태를 하나의 흐름으로 모았다. 덩굴처럼 얽힌 형상들은 ‘바라본다’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한 결과이기도 하다. 곽인탄에게 ‘바라본다’라는 것은 대상과 관계를 맺는 일인데, 작업실 창밖으로 가장 자주 마주하는 나뭇잎은 이러한 시선의 출발점이 되며, 이는 풍경을 응시하고 기억의 형상으로 풀어내는 고근호의 작업과도 자연스레 연결된다. 두 작가의 작업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보지만, 결국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을 공유한다. 고근호와 곽인탄의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관객은 균열과 덩어리, 시선과 표정 사이를 오가며 그 관계 안으로 스며든다. 균열을 따라 치켜든 물감의 덩어리와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는 얼굴들은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되지 않는다. 이들은 생성되고 흔들리는 과정 자체를 드러내며 변화하고 열려 있는 상태를 우리에게 제안한다. 참여 작가: 고근호 Ko Geunho, 곽인탄 Kwak Intan 주최/기획: APOproject 에이피오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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