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전시는 선형적인 시간 인식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해야 할 일들 속에서 시간을 분절하고 소모한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도 감각은 시간의 연속성을 이탈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바람과 빛, 공기와 같은 비물질적 요소들은 특정한 찰나에 신체와 접촉하며 이미 지나간 시간을 현재로 호출한다. 이때 시간은 과거와 현재로 구분되는 선형적 구조가 아니라, 감각을 통해 서로 겹쳐지고 다시 구성되는 경험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경험은 전시 공간 안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확장된다. 관람객은 고은지 작가의 도예 작품에 담긴 차를 마시며 손에 닿는 온기와 입안에 머무는 향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신체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전시장 안에서 차를 따르고 마시는 행위는 일반적인 휴식이 아니라, 현재를 감각하도록 만드는 특별한 장치가 된다. 김선영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감각의 결을 보다 다층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특정한 장면을 완벽하게 재현하기보다 일부만을 제시함으로써 기억과 감각, 시간의 흔적들이 서로 포개지는 상태를 만든다. 이는 하나의 이미지를 감상하는 경험이라기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의 상태를 마주하는 일이 된다. 정재훈 작가는 제주의 풍경에서 출발해 오름과 바람, 자연의 흐름 위에 가상의 공간과 장소를 중첩시킨다. 그의 풍경은 실제 장소의 재현인 동시에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는 비실재적 공간이기도 하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흐려진 장면들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고정되지 않은 채 부유하며, 서로 다른 속도의 시간이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도록 만든다. 도시의 직선적인 시간과 제주의 순환적인 시간은 충돌하지 않고 서로에게 천천히 스며든다. 관람객은 그 사이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의 풍경을 경험하게 된다. ⟪당신이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바쁜 동안에도 제주의 바람은 흐른다⟫는 제주의 풍경을 재현하는 전시가 아니다.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내닫는 서울의 시간은 효율과 성취를 재촉하지만, 제주의 바람은 무구한 순환 속에서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전시는 서로 다른 속도를 지닌 두 장소의 감각을 한 공간 안에 병치하며, 소모되는 일상 너머에 존재하는 ‘이면의 시간’을 드러낸다. 서울이라는 물리적 거리 위에서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감각이 겹쳐지고, 그 사이에서 비선형적인 시간 경험의 장이 형성된다.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들의 ‘흙, 선, 색’은 조형적 완결성을 위한 요소가 아니라 시간과 감각을 드러내는 매개로 기능한다. 물질적 변형을 거친 흙은 시간의 축적과 변화를 품고 있으며, 흐르는 선은 고정되지 않는 움직임과 비가시적인 흐름을 드러낸다. 중첩되고 번지는 색은 깊이와 경계를 특정할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관람객은 작품을 해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몸의 반응을 통해 시간과 감각의 층위를 경험하게 된다. 또한 차와 향, 소리와 같은 감각적 장치들은 신체의 리듬을 천천히 늦추고 일상적인 시간 감각을 이완시킨다. 이를 통해 현재는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아니라, 몸 안에 머무르는 시간으로 감각된다. 결과적으로 이 전시는 일상의 풍경을 재현하거나 소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미 흐르고 있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경험을 제안한다. 정현미(제주갤러리 큐레이터)
모든 전시 정보에 대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전시 정보는 변경되거나 오기입될 수 있으니 방문 전 각 기관에 확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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