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3등급

검고 뜨거운 차고 빛나는

Date
2024.03.27 ~ 2024.05.03
Venue
서울 종로구 인사동 178-2
Category
분류 전
관람시간
월~일요일 10:30~18:00 (확인 필요)
참여 작가
김시영, 이상협(Kim Syyoung, William Lee
문의
02-733-8877

모든 전시 정보에 대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전시 정보는 변경되거나 오기입될 수 있으니 방문 전 각 기관에 확인 부탁드립니다.

전시 소개

전시 개요 OVERVIEW Kim Syyoung, William Lee 흑자(黑磁)와 은기(銀器)의 두 장인(匠人) 정영목(서울대 명예교수)      “아름다움에의 흠모는 – 도덕, 사실, 유용성, 감각,        그리고 되도록 현실 그 자체로부터 멀리 – 위험할 정도로 이들보다 우선한다.”¹ 1. 장인의 작업(作業) 흑자와 은기는 분류상 공예(工藝)에 속한다. 이러한 분류가 요즈음 무의미하지만 그렇더라도 필자가 이야기하려 할 두 장인, 김시영은 도자공예가를 줄여 도예가로, 이상협은 금속을 다루기에 금속공예가지만 그냥 줄여 공예가로 호칭하는 것이 이들을 ‘작가’라 부르기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장인적 유대감이 강한 공예의 전통이 반영된  – ‘artist(작가)’라 통용되는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이 조금은 덜 묻어나오는 – 언어인 것 같기 때문이다. 공예는 기본적으로 재료에 천착(穿鑿)한 노동집약적 작업이다. 필자가 화두(話頭)처럼 던진  “아름다움에의 흠모”는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런데 공예 또는 미술과 관련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의 대부분은 옛날부터 사용하던 한자어(漢字語)이거나 아니면 한자어에 기반한 일본식의 표기를 따른 것이다. 한 예로 공예의 장인정신과 직결되는, 흔히 쓰는 ‘작업(作業)’이란 언어를 살펴보자. ‘작업’이란 한자어의 의미를 우리말로 풀어쓰면 무언가를 ‘만드는 일’쯤 되지만, 이 말이 함축하는 뉘앙스의 범위는 한층 깊고 넓다. ‘업(業)’이란 어찌 보면 그냥 우리의 ‘생활(life)’ 그 자체를 의미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선, ‘업’이라 하면 ‘일’이란 언어가 먼저 떠오르는데 이것은 우리의 몸과 사고와 직결되는 ‘노동’을 뜻한다. “몸과 사고의 노동”은 곧 우리의 ‘직업’과 ‘생계’로 이어진다. ‘업’을 실행한다는 것은 그것이 곧 우리의 ‘생활’일진대, 그것은 필연적으로 종교와 윤리 같은 무언가 ‘근원, 기초, 시작’과 연루된 사회적 함축성을 띨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업보(業報)’ 혹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뜻을 품고 있으니,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이 곧 ‘업 (業)’인 것이다. 이 말의 뜻을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김시영과 이상협은 ‘작가’이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공예의 행위와 사고를 ‘일’ 즉 ‘노동’으로 받아들여,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의 ‘직업’을 표방하고, 그 직업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이어간다는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즉 김시영과 이상협이라는 전업공예가로서의 ‘당당함’이 ‘작업’이라는 단순한 용어 속에 함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업보(業報)’처럼 다가온, 주어진, 선택한 공예가로서의 고뇌와 환희의 ‘생생함’이 곧 ‘작업’인 셈이다. 이러한 작업의 속성이 생산해낸 결과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나, 사회의 현실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앞세워 유통과 가치의 ‘상품성’에 치중하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안고 있다.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결과물이 가질법한 그 과정으로서의 진정성의 농도와 미학적인 평가는 작가를 떠나 관람자가 개입하는 또 다른 범주의 문제인 것이다. 2. 김시영의 흑자(黑磁) 근자(近者)에 이르러 단색화의 재유행과 함께 단색화류의 추상을 공예도 추구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달항아리’가 한국인의 미감을 대표하는  ‘미적(美的)’ 오브제로 부각(浮刻)하면서, 전통과 맞물린 추상성의 재현을 공예로 따라 하는 경향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그 경향과 함께 공예는 공예의 태생적인 기능(器能)과 멀어지면서 흔히 우리가 미술의 주류라 일컫는 회화와 조각의 개념과 미학, 장식성을 덩달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작가’라는 호칭으로 이들 두 장인을 편하게 부른다.  시대가 변했다 하더라도 공예의 순기능이 우리 일상생활과 함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림은 벽에 안 걸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그릇은 당장 먹는 데 없어서는 안될 필요충분조건의 기물이다. 필자보고 무식한 소리라 하겠지만 그만큼 공예의 태생적인 순기능이 약화되고 있는 느낌이 안타까워 한마디 적었다

모든 전시 정보에 대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모든 전시 정보에 대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전시 정보는 변경되거나 오기입될 수 있으니 방문 전 각 기관에 확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