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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폴리곤의 순례자들 POLYGON PILGRIMS 박재훈 개인전 우리가 '가상세계'라 부르는 공간은 더 이상 현실의 대체물이 아니다. 그것은 고유한 물리와 시간, 그리고 인식의 규칙을 갖는 하나의 우주이며, 그 내부에서 인간의 존재 조건은 근본적으로 재편된다.〈폴리곤의 순례자들〉은 점군(point cloud)과 폴리곤(polygon), 픽셀과 복셀, 벡터와 좌표로 구성된 이 새로운 우주 속에서, 방향을 상실한 채 이동하는 동시대 주체의 모습을 탐구하는 전시이다. 박재훈의 작업에서 공간은 무한히 연결된 격자의 형태로 출현한다. 그러나 점들의 집합이 폴리곤이라는 구조를 획득하는 순간, 공간은 즉각 내부와 외부를 생산하며 단절을 제도화한다. 이 연결은 연속성을 보장하기보다 분절을 가속화하고, 상실과 소외의 감각을 구조적으로 내재한다. 이때 순례자는 길을 잃은 존재라기보다, 애초에 '길'이라는 개념이 허락되지 않은 세계에 진입한 주체로 위치 지어진다. 이 전시의 중심에는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절대좌표계의 원점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항상 중심에 존재하지만, 경험적으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이 지점은 사건의 지평선처럼 인식의 경계 너머에 놓여 있다. 폴리곤의 순례자들은 이 원점을 향해 이동하지만, 그 여정은 도달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벡터의 공간에서 운동은 진보의 서사가 아니라, 욕망이라는 추진체에 의해 지속되는 끝없는 지연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박재훈은 이러한 가상공간을 순례의 장으로 설정한다.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손 대신 인터페이스를 통해 공간을 구축하고, 기울어진 화살표의 미세한 떨림으로 폴리곤의 형상들을 호출한다. 내부를 갖지 않은 건축, 기억을 상실한 기계의 형상을 한 이 조각들은 복셀의 층위 속에 저장되고, 복제되며, 다른 버전으로 끊임없이 분기된다. 완결을 향하지 않는 이 조형들은 하나의 삶이 단일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는 동시대적 존재 조건을 반영한다. 전시 공간을 구성하는 좌표축과 방향 지시 장치(gizmo)는 길을 안내하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방향감각이 이미 상실되었음을 은폐하는 기호에 가깝다. 공간이 오직 x, y, z의 세 좌표축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이 축들 뒤에 접혀 봉인된 또 다른 차원은 무엇인가.〈폴리곤의 순례자들〉은 이 봉인된 차원을 향한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시간 역시 이 전시에서 선형적이지 않다. 회색 카펫이 깔린 복도와 순차적으로 열리는 문들, 그리고 잠시 스며들었다 사라지는 빛은 '현재'가 경험되지만 결코 소유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현재는 기억되지만 재현되지 않으며, 그 불가능성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처럼 시간은 흐름이 아니라, 접근 불가능한 방들의 연쇄로 제시된다. 박재훈의 작업은 가상공간 속에서 숭고의 개념을 재정의한다. 이 세계에서 숭고함은 초월적 중심이나 안정된 질서에 있지 않다. 그것은 방황하고 소진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감각의 극점이며, 절대좌표계의 원점에 다가갈수록 오히려 목적과 방향을 상실하는 역설 속에 존재한다. 중력과 빛의 속도마저 매개변수로 환원된 이 공간에서, 폴리곤의 순례자들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끊임없이 분기되는 좌표 위의 하나의 점으로 남는다. 〈폴리곤의 순례자들〉은 디지털 기술의 시각적 재현을 넘어, 가상공간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 존재의 조건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전시이다. 박재훈은 좌표와 격자, 데이터와 인터페이스로 이루어진 세계 안에서 오늘날의 순례자—도달할 수 없는 중심을 향해 이동하면서도 그 여정 속에서만 존재를 감각하는 주체—의 초상을 제시한다. 이 전시는 완성이나 도착이 아닌, 끊임없는 이동과 지연 속에서 형성되는 동시대적 삶의 형식을 조용히 드러낸다. *출처:WW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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