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5등급
MMCA 다원예술 2026: 탐정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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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분열자의 산책. 이것은 소파에 누운 신경증자보다 나은 모델이다.” (질 들뢰즈·펠릭스 과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인공지능에게 즉각적인 연산과 답변을 기대하는 동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관찰하는 몇몇 이들, 예술가들, 그리고 아이들을 ‘탐정’으로 호명합니다. 누군가를 유심히 살펴보고 그 사람의 흔적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존재는 이제 탐정 외에는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집요한 관찰은 단순히 정보를 모으는 행위가 아닙니다. 비밀과 진실을 알아낼 수 있다고 믿고, 누군가를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인류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놓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으며, 과거를 추적하는 행위를 통해 도래할 미래를 예견하고자 하는 복합적인 시선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올해 다원예술 «탐정의 시간»에서 말하는 탐정은 고전적인 탐정에서 살짝 빗겨나, 기존과 다른 두 가지 변화의 흐름 속에서 휘말려 있는 이들입니다. 첫째는 '특권의식'이 붕괴된 탐정입니다. 외부적이고 특권적인 위치는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확고하게 규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고정된 진리(범인이나 명확한 답)도 없고, 언제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정체성의 혼란이 '탐정'이란 위치나 관점을 기존과 다르게 합니다. 두 번째는 관찰과 추론이 시각적, 논리적 행위인 동시에 철저히 신체와 시간의 행위라는 점입니다. 다른 존재를 깊이 지켜보는 일은 엄청나게 긴 시간과 육체적인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과도한 헌신과 인내, 비슷한 것들의 반복은 어느새 관찰의 대상을 넘어 탐정 자신의 삶의 속도를 극적으로 느리게 변화시킵니다. 깊어진 시간 속에서 햇살의 궤적, 누군가의 머리카락, 자신의 숨소리 같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기계적 속도와 구별되는 인간 고유의 '깊고, 느린’ 시간, 이것이 올해 다원예술의 주제입니다. 저는 이 «탐정의 시간»을 영어로는 ‘Deep Time’(심원한 시간)이라 적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지층대를 관찰하던 한 지질학자가 제안한 이 개념은 인간의 척도를 넘어선 거대한 지질학적 시간을 의미하며, 이 시간은 고정과 완결을 거부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르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이러한 ‘길고, 두터운’ 시간을 데이터를 습득하여 오차를 줄여 최적의 정답을 빠르게 도출하는 지극히 목적 중심적인 인공지능의 '딥러닝’(Deep Learning)과 비교해보고 싶습니다. 심원한 시간(Deep Time)은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층위에는 변화와 에너지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탐정의 시간»이 예술가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시간/지층은 아직 완전히 굳지 않아, 외부 영향을 받으면서도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모습으로 솟아오르는 ‘가소성’(plasticity)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아이들의 창의적인 관찰과 예술가의 무한한 작업은 시간의 덮개를 벗기고, 고정된 지층과 질서를 흔들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결국 다원예술의 탐정은 고정된 진실과 결과를 추구하지 않고, 깊은 시간 속에서 단절, 팽창 그리고 누적을 통해 또 다른 의미를 드러내는 존재입니다. 이는 인공지능의 즉각적 연산(답변), 다시 말해 가속화된 수행(agency)에 대응하는 동시대 예술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탐정의 문제 해결 과정(귀납-가추법-연역)과 LLM(대규모 언어 모델, Large Language Model)의 답변 도출 방식(거대한 귀납, 생각의 사슬을 통한 연역)은 논리적 구조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목적 지향적인 인공지능의 시간은 탈신체, 비신체의 관찰로 피로감을 외부화합니다. 반면 탐정의 시간은 사건 현장을 떠난 뒤 비로소 시작되는, 이미 일어난 일을 머리와 마음속에 다시 그려보는 복기(復棋)와 사소한 흔적들이 의미를 갖기까지 기다리는 처연한 인내의 시간입니다. 마치 미술관과 극장을 떠난 이후 어느 밤 불현듯 발생하는 재-감상과 같습니다. 이 재-감상은 보는 이의 사유와 감정을 다시 구성합니다. 이렇듯, 탐정은 산책하면서 산, 나무, 기계, 하늘, 우주를 바라보며 시간을 재-구축합니다. 이 과정에서 탐정은 단순히 답을 내는 기계가 아니라, 사건의 틈새에서 존재들의 관계를 엮어내는 존재가 되거나, 때로는 실패하는 주체가 되곤 합니다. 그 깊은 지연(Deep Delay)에서, 탐정은 스스로 고뇌하며, 끈질기게 응답하고, 시간의 화살을 미행합니다. 오랫동안 관찰하는 행위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1부와 2부의 가교가 될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미행›(Following, 1998)이 보여주듯, 무목적적으로 보이는 관찰은 대상의 세계에 개입하고, 둘 사이의 새로운 관계와 물성을 빚어냅니다. 서로의 시간 안으로 끌어당기고, 시간은 지표처럼 신체와 사물에 서서히 자국을 남깁니다. 그리고 지독한 몰입은 관찰자와 대상을 본래의 자리에서 밀어내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변화시킵니다. 가소성과 영구적 변형 사이에 지독한 갈망과 돌이킬 수 없는 탈주가 고개를 듭니다. 1부 ‘관찰과 추적’에서 축적된 심원한 시간이 2부 ‘느린 탈주’로 나아가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미행(Following)은 나의 해명이며, ...나의, 그러니까...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나만의 '복기(Account)'이다.” (영화, ‹미행›) 참여작가 료지 이케다/앙상블 모데른, 마말리안 다이빙 리플렉스, 엘 콘데 데 토레필, 마테오 마랑고니/디터 반도렌, 신서, 위성희, 리타 후프와이크, 살로메 무이, 샘 소이어만, 박민희, 크리스토퍼 놀란, 정여름 ※ 관람 안내 및 유의사항 -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예약제와 현장 예매로 운영되며, [전시 관람 예약]-[다원예술]을 통해 예약 가능합니다. - 개별 프로그램의 자세한 소개는 [이벤트] 상세 페이지를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 예약은 프로그램 2주 전 오픈됩니다. (예약 오픈일이 휴일인 경우, 그 전날 평일에 오픈합니다.) - 상세 일정 및 내용 등 변동될 수 있습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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