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1등급
황웅태 개인전: 펄럭
전시 소개
황웅태 작가 노트 시작은 「플러버(1997)」였다. 지성과 자아를 갖춘 슬라임. 영원히 건조되지 않는 비뉴턴 유체.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메타몽이나 매끈하게 증식하는 베놈 역시 관심이 갔다. 그중에서도 문방구에서 구할 수 있었던 플러버는 어릴 적 의인화 놀이의 적절한 대상이었다. 갓 꺼내면 더없이 생기 넘치고 촉촉하지만, 점차 수분을 잃고 손때를 얻으며 볼품없이 말라붙고 마는 플러버의 생애. 유년기의 경험은 ‘물감이 살아있다면 스스로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존재할까’라는 망상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첫 회화 작업의 토대였다. 하지만 추리 소설의 탐정이 작가의 지능을 능가할 수 없듯, 내가 어설프게 생명력을 부여한 물감의 미래는 자살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미련 없이 접었다. 지금껏 거쳐온 자취방들이 대부분 옥상 밑이었기 때문일까, 이곳의 열악하고도 탁 트인 감각은 어딘지 정겹다. 그리고 부피라는 공간은 작가에게 차력쇼를 유도하는 묘한 힘이 있다. 폐기했던 상상을 이 옥상으로 다시 끄집어 올려본다. 물감은 직사광선의 뜨거운 열기에 제풀에 터져 죽든, 바닥에 흉하게 눌어붙든 할 것이다. 아니면 이 모든 물리적 악조건을 뒤집어쓰고도 꽤나 재밌게 뒹굴며 놀다 가거나. 전시 경관에 영향을 준 것 중 하나는 ‘지구 샌드위치’라는 실없는 위상학적 농담이다. 지구 반대편 두 지점에 식빵을 내려놓으면 지구 전체가 샌드위치의 속재료가 된다는 인터넷 밈이다. 거대한 스케일의 말장난을 지지체의 구조에 적용해본다. 물론 지구 반대편에서 빵을 덮어줄 동료는 없기에, 염두에 둔 대체재는 튀일(tuile)이다. 기와를 뜻하며 밀가루 반죽으로 구워낸 얇고 바삭한 그물망으로, 주로 음식 최상단에 얹어져 식감을 더하는 용도로 쓰인다. 튀일은 언제나 지지체의 꼭대기에 선다. 옥상 위에서 물감이 자폭하면 그물망처럼 얼기설기 펼쳐지지 않을까. 부피를 점유하는 것은 이런저런 몰드 위에 물감을 흩뿌려 떼어낸 나약한 물감 껍데기다. 캔버스를 무대 삼아 남성적인 행위로 신화화되었던 드리핑의 궤적은, 지지체를 잃는 순간 비바람에 쉽게 찢어지는 얇은 아크릴 베일에 불과해진다. 축 처진 튀일을 옥탑방에 덮어씌운다. 지지체를 가리는 행위는 껍데기 아래에 놓인 실제 굴곡과 부피, 나아가 외부의 대기를 은폐를 통해 드러낸다. 비바람에 펄럭이며 마모되고 찢어지는 형태에 따라 이 전시는 조기 종료될 수도 있다. 또 하나, 이 물감에는 뒤가 있다. 동료들과 몰드 위를 걸어 다니며 적당히 즐겁고 피로하게 물감을 뿌려댔고, 디딜 곳이 좁아지는 과정에서 물감들은 밟히고 뭉개졌다. 상상을 물질로 구현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물리적인 흔적이 새겨지기 마련이다. 의도와 무관하게, 그물망의 임시 지지체였던 몰드는 기묘한 워크숍의 무대로서 기능했다. 마모되어 갈 표면의 이면에는 그렇게 얽혀든 발걸음과 시간들이 끈적하게 담겨 있다. 일정: 2026. 5. 23. - 2026. 6. 13. (조기 종료 가능) 시간: 13:00 - 18:00 (월요일 휴무) 장소: 서울 종로구 혜화동 53-24, 옥상 참여 작가: 황웅태 제작 도움: 강건, 강다영, 강주홍, 김다솔, 김한울, 서민우, 정지혜, 지윤구 설치 도움: 강주홍, 김다솔, 김한울, 서민우, 정지혜, 조성재 그래픽 디자인: 강주홍 촬영: 지윤구 주최: 부피
모든 전시 정보에 대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전시 정보는 변경되거나 오기입될 수 있으니 방문 전 각 기관에 확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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