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1등급

바질페스토 (노동) 샌드위치

Date
2026.04.17 ~ 2026.05.23
Venue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로51길 20, 지하1층
Category
분류 전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월 휴무, 화-토 10:00-19:00, 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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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바질페스토 (노동) 샌드위치》 : ‘예비’ + ‘학예’ + ‘노동’ ‘학예노동’은 박물관, 미술관, 문화재단 등에서 전시 기획 및 작품 수집・관리・연구・운영 등을 수행하는 일을 뜻한다. 그 앞에 ‘예비’가 더해지면 예비학예노동이 된다. 학예노동은 이같이 예비라 불리는 인력으로 돌아간다. 예비학예노동으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기관연수단원’, 한국박물관협회 및 한국사립미술관협회의 ‘전문인력 및 예비학예인력’, 서울특별시의 ‘매력일자리(구 뉴딜일자리)’ 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예비학예노동의 명칭은 끝없이 존재한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예비학예노동자는 노동을 수행하지만 ‘진정한 학예노동’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무언가가 되어야만 하는 미래적 존재라 여겨진다. 이러한 내부의 태도는 문화예술계에서 노동을 시작한 이들을 소진시키고 어디에도 마음 두지 못한 채, 계속해서 떠돌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에 관한 내부적 비판이 쉽게 나오지 않은 것은 이들의 ‘예비성’ 때문이다. 예비학예노동자는 ‘예비-’로 인해 학예노동자로서 당사자성을 필연적으로 잃게 된다. 또한 계속해서 변하는 주변 사람과 곧 이곳을 떠날 사람으로 대하는 주변의 태도에 익숙해지면서 서로의 연결은 끊어진 채, 서로를 쉽게 스쳐 지나가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비성을 지닌 예비학예노동자는 연대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이곳에 뿌리 내리지 못했음에도 우리는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까? 과연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 상상을 위해 자신의 자원을 쏟을 이는 누구일까? 우리는 서로를 돌볼 수 있을까? 말뿐인 연대가 아닌 서로의 존재와 마주치며 구질구질하게 함께할 수 있을까? 발전이 아니라 정체를 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노동자도 아니고 협상할 대상도 불명확한 이들이 함께 투쟁할 수 있을까? 예비학예노동자는 결국 자신이 속한 구조의 이상함을 발화(發話)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전시공간들은 사회에 대해 첨예한 이야기를 다룸에도 내부 문제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일까? 이곳에서 유령처럼 떠돌지 않고 땅에 닿는다는 감각을, 뿌리내린다는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예비학예노동 구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형태의 다음을 떠올릴 수 있을까? 전시 《바질페스토 (노동) 샌드위치》는 ‘예비성’ 이름 아래 쌓아온 질문들을 통해 예비학예노동에 대해 발화하고자 한다.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보이는 〈열린송현녹지광장에 몰래 심은 바질: 사진-텍스트 아카이빙〉(2024-2025)은 예비학예노동 사무실에서 키우던 바질을 ‘이건희 기증관(2028년 완공 예정)’이 세워질 열린송현녹지광장(이하 ‘송현’)에 몰래 심고, 이를 필름사진과 텍스트로 기록한 작업이다. 조선시대부터 삼성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욕망한 송현 땅을 빼앗아 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은 예비학예노동의 불안과 바질의 상황이 하나의 레이어로 겹치면서, 예비성을 갖는 두 대상의 동일시를 보인다. 전시는 이러한 아카이빙을 기반으로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상태로 문화예술계를 떠도는 마음을 에세이적으로 다루거나(〈바질페스토 (노동) 샌드위치〉(2025)), 송현에서 훔쳐 온 흙에 바질을 심고(〈송현에서 훔쳐 온 흙과 바질 씨앗〉(2026)), 학예노동의 필수 조건이 된 1.8cm 두께의 석사학위논문으로 균형 잡기 놀이를 하며(〈기획자 최연준의 석사학위논문 「마이클 애셔 작업 연구 장소특정성으로의 전환」〉(2023)), 예비학예노조의 가능성을 떠올리면서 해소되지 못했던 질문을 전시공간에 던진다.(〈(예비)예비학예노동조합〉(2026)) 전시는 예비학예노동의 감각과 질문을 드러내고자 ‘전시공간에서 함께 발화하기’를 선택한다. 전시공간은 학예노동의 결과물이 이뤄지는 장소이자, 동시에 학예노동이 소외된 장소이다. 이러한 전시공간에 전시공간을 구축하는 노동과 부산물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행위는 이곳에서 소외된 대상, 즉 쉽게 떠들어지지 못했던 대상에게도 발화의 힘이 있음을 보이고자 함에 있다. 그렇게 전시는 예비학예노동자에 대한 발화를 위해 현 상황을 격파하기 위한 뾰족한 방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들의 일터인 전시공간 한가운데에서 ‘구질구질하고 어설프게, 그럼에도 잠깐이나마 앉아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가끔 말을 뱉어보다가도 머쓱하게 헤어지고,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함께 발화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함께 나눈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각자가 지닌 마음을 나눌 때 우리는 일시적으로나마 연결됨을 느낄 것이다. 전시공간 안에서 흐릿하게나마 서로의 존재를 마주하고, 각자의 질문들을 페스토처럼 잘게 빻고, 샌드위치처럼 차곡차곡 쌓으면서 당신이 머무르는 현재의 이상함을 인식하고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상상해 보길 제안한다. 어느 예비학예노동자로부터(최연준, 매미와 비둘기) 참여작가: 매미와비둘기 포스터 디자인: 민동인

모든 전시 정보에 대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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