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1등급
사과와 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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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기차 안에서 마주 앉은 낯선 이의 손에 사과와 과도가 들려 있다면, 우리는 잠시 멈칫하며 긴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사과와 같은 과도가 엄마의 손에 쥐어져 있다면, 그 장면은 전혀 다르게 읽힌다. 우리는 경계하기보다 기다린다. 사과가 잘려 접시에 놓이거나, 내 손바닥 위로 건네지기를. 대상은 변하지 않지만, 관계는 감각을 바꾼다. 전시 《사과와 과도》는 바로 이 미묘한 차이에서 시작한다. 사과를 건네는 손과 과도를 쥔 손은 서로 다른 제스처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조건 안에 놓여 있다. 호의는 열려 있으나 완전히 무방비하지 않고, 관계는 형성되지만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남긴다. 전시는 그 거리와 관계의 상태를 회화의 형식 안에서 탐색한다. 김정아의 작업은 작가가 일상과 주변에서 발견하고 수집한 사물들에서 출발한다. 천 조각, 종이, 실꾸러미, 비즈, 나뭇가지, 철사와 같은 요소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준비된 재료라기보다, 이미 사용되었거나 버려졌거나, 오랜 시간 보관되어 온 것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것들을 다시 선택하여 염색하고, 꿰매고, 엮어 새로운 구조를 형성해 나간다. 종이는 천 위에 부착되어 또 다른 표면을 형성하고, 실은 서로 다른 요소들을 연결하며, 나뭇가지와 철사는 화면의 구조를 지지하는 동시에 내부와 외부를 잇는 매개로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재료의 변형보다, 재료들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는 방식이다. 각각의 요소는 중심과 주변의 위계 없이 서로를 지지하며 하나의 상태를 유지한다. 작가의 개입은 물질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봉합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출처를 지닌 요소들이 하나의 표면 위에서 공존하도록 두는 데 가깝다. 그에게 회화는 이미지를 고정하는 장이 아니라, 물질들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관계를 형성하는 구조이다. 화면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채 열려 있으며, 각각의 요소는 고정된 의미로 환원되지 않고 그 자체의 밀도를 유지한다. 유창창은 보다 명확한 형상을 전면에 드러내면서도, 그 형상이 하나의 존재로 확정되는 것을 끊임없이 유예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얼굴은 단일한 형상으로 닫히지 않는다. 얼굴의 윤곽 안에는 또 다른 인물의 실루엣이 겹쳐 있으며, 그 형상들은 눈과 코, 입을 이루는 동시에 독립된 존재처럼 남는다. 하나의 표정은 여러 형상이 잠시 겹쳐 형성된 구조에 가깝고, 그 결합은 완전히 봉합되지 않는다. 인물의 뒤편에는 특정한 장소로 확정되지 않는 공간이 펼쳐진다. 그것은 하늘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다의 수평선이나 눈 덮인 들판, 혹은 사막과 같은 풍경으로 읽히기도 한다. 자동차나 사과, 뼈를 연상시키는 빵과 같은 사물들은 배경에 놓여 장면의 단서처럼 작용하지만, 화면을 하나의 서사로 고정하지는 않는다. 그의 회화는 설명되기보다는 감각으로 남는다. 화면은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기조를 유지한다. 옅은 유머를 머금고 있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여백과 잔잔한 고요함이 함께 머문다. 인물은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하지만 그 장소는 분명히 규정되지 않고, 장면은 끝맺음에 이르지 않은 채 열린 상태로 지속된다. 그리하여 유창창의 회화는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기보다, 형상과 공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미묘하게 형성되는 상황의 순간을 붙들어 둔다. 이미지는 확정되기 직전의 상태로 머물며,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품은 채 조용히 이어진다. 두 작가의 작업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면을 구성하지만, 완결된 상태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김정아의 화면에서 물질들은 느슨하게 연결된 채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유창창의 화면에서 형상들은 하나로 구성되면서도 단일한 의미로 확정되지 않는다. 하나는 물질을 통해, 다른 하나는 이미지를 통해 관계의 조건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관계는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고 언제나 일정한 거리와 긴장을 유지한다. 사과와 과도는 하나의 손 안에 함께 놓일 수 있지만, 그 의미는 고정되지 않는다. 호의가 될 수도, 경계가 될 수도 있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표면 위에서 관계는 형성되면서도 유예된다. 사과와 과도가 같은 손 안에 놓여 있듯, 이 작품들 또한 서로를 향하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머문다. 그 사이에서 감각은 설명되기보다 남겨져 지속된다. 참여작가: 김정아, 유창창 출처: 눈컨템포러리
모든 전시 정보에 대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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