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2등급
만질 수 있는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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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바야흐로 스크린이 지배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인류는 책을 펼치고 페이지를 넘기는 몸짓을 본능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종이책은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조각에 대해 논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몸’이라는 개념을 언급하게 된다. 회화의 일루젼과 다르게, 조각은 우리와 같이 ‘몸’을 가지고 중력을 받으며 이 세계 안에 존재한다. 그 이유로 인해 우리가 조각을 마주할 때, 그 자리에는 몸을 담지했기에 필멸하게 되는 존재들 사이의 교감이 발생하게 된다. 이미 우리 눈앞에 드러나 있는 예술 작품들과는 달리, 책은 열어젖히기를 택했을 때 열린다.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두 손으로 책을 펼치고, 고개를 숙이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몸짓이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책은 그 자체로 몸인 한편 몸과의 직접적인 관계 맺음을 만들어내는 조각적 사물이기도 하다. 책의 가장 기본적인 원형은 육면체이다. 육면체에는 여덟 개의 꼭짓점이 존재한다. 여덟 개의 꼭짓점을 이어 그릴 수 있는 광장과 방의 모습을, 나는 상상해 본다. 광장과 방은 다르다. 조각가가 조각을 담은 손수레를 밀고 광장으로 나갈 때, 조각이 조각이 되기까지의 과정들을 담은 조각가의 노트는 여전히 그의 방에 놓여 있다. 그러나 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오늘만큼은 그 노트와 함께 광장으로 나가기로 결심한 조각가들이, 옆구리에 저마다의 책을 끼고서 이곳 온수 공간의 햇빛 아래로 모여 들었다. * 나는 예술 작품을 보는 경험이 ‘조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한 방향에서 바라보고 있을 때 그것의 반대편을 동시에 볼 순 없는 삼차원의 존재로서의 조각은 언제나 뒷면을 가진다. 그 뒷면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신의 일이다. 신과 달리 예술가는 창조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유로부터 유를 창발시키는 존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예술가가 ‘빛이 있으라’라고 말한다고 해서 빛을 갑자기 만들어낼 수는 없다. 예술 작품은 시간 속에서 나온다. 그처럼 ㅈ ㅗ ㄱ ㅏ ㄱ, 혼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이 낱개의 음소들이 조각가의 재료들이라고 했을 때, 이 재료들이 ‘조각’이라는 의미를 담지한 하나의 몸의 형상을 이루게 되기 위해서는 건축의 과정이 필요하다. ㅈ과 ㅗ, ㄱ과 ㅏ와 ㄱ 사이의 행간에 서서, 조각가는 그것들의 배열을 고민한다. 조각의 뒷면에 자리한 사유의 조각들은 그 지난한 고민의 시간을 거쳐 조각으로 거듭난다. 마침내 조각이 ‘된다’. * 예술가는 해석하고, 복원하고, 자신의 질문에 응답할 책임을 가진 존재이다. 무수한 물음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그에게는 사유의 과정이 필요하다. 멈추고 손을 뗐다가 다시 작업을 이어 나갈 때, 어제까지는 이것과 무관해 보이던 저것이 오늘은 서로 전혀 무관하지 않은 것들로 보이게 되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그러한 생각의 변화를 일기를 쓰듯 기록한다. 작품의 의미는 초기에 설정되기도 하지만 이렇듯 작업을 진행하며 기록해 나가는 과정 안에서 변증법적으로 재설정된다. 그러므로 예술이 단순히 형태를 재현하는 회화적, 조각적 기술이 아니라 정말 의미와 함께 가는 것이라면, 수없이 많은 작가 노트와 스케치, 다양한 실험들이 그것의 뒷면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과정 속에서 예술가는 자신만의 언어를 천천히 찾아간다. 그 궤적들을 따라가보다 보면, 흔들리며 드러나는 예술 작품의 뒷면이, 조각이 몸을 얻게 되기까지의 시간들이 있다. 아티스트 북은 예술가가 자신만의 고유한 창작 세계의 원천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저마다 고유한 존재들이기에 창작의 방법론 또한 각기 다르므로, 그 안에는 정서를 그리는 드로잉, 발상을 남기는 드로잉, 조각을 위한 구조적 스케치, 컨셉을 구축하는 개념적 스케치, 오랜 기간 아카이빙해온 사진들과 텍스트들까지, 작업의 흐름과 그 기록들이 각양각색의 형식으로 담겨 그만의 독자적 색깔을 드러낸다. 햇살이 스며드는 이 공간 안에서 그 중 이끌리는 책을 펼쳐보는 행위가, 당신이 더 가까워지고 싶은 예술가와 함께 산책하는 경험으로 느껴지길 바란다. 산책을 하다 보면 흘린 걸 줍기도 하고 다시 되돌아가기도 하는 것처럼, 사유의 편린들인 ㅈ ㅗ ㄱ ㅏ ㄱ이 하나의 ‘조각’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우리의 생각이 몸을 찾아가는 여정을 여러분만의 속도대로 읽어 주었으면 한다. 픽셀의 빛으로 단순히 환원될 수 없는 몸을 가진 책들이, 오늘 이 자리에 당신의 몸과 맞닿고 있다. 당신 앞에 놓인 이 만질 수 있는 조각들을 마음껏 펼쳐보고 넘겨보시기를 바라며, 2026년 2월, 만질 수 있는 이 모든 조각들을 사랑하는 조각가, 주수빈 드림. 참여작가 김보경 김영서 김진선 김채은 나하윤 박희민 방은우 신민주 윤아인 은신영 이가영 이고은 이서원 이용현 이주은 이채영 주수빈 글: 주수빈 디자인: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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