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3등급

오수환 : After Gesture

Date
2026.05.08 ~ 2026.06.10
Venue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로60길 21 분더샵 청담 지하 1층
Category
갤러리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화-토 10:00-18:00 (일, 월 휴관)
참여 작가
오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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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전시소개 오수환의 작업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반복되어 온 시간의 밀도이다. 바닥과 벽, 선반 위에 쌓인 수많은 종이와 캔버스는 결과라기보다 매일 이어진 행위가 남긴 흔적에 가깝다. 그곳에는 완성된 이미지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 그는 여전히 매일 그린다. 먹물로 한지에 선을 긋고, 다시 그리고, 또 그린다. 이 반복은 무엇인가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덜어내기 위한 시간이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집요한 행위가 화면을 채우는 대신 점점 더 비워낸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하나의 역설 위에 놓여 있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체득해 온 존재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젊은 시절 베트남 전쟁에 자원해 참전한 그는 생명을 걸고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이데올로기나 사상, 어떠한 설명과 명분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체험한다. 그 극한의 순간에 남는 것은 오직 상황과 자기 자신뿐이다. 전쟁 이후 그는 형상과 서사를 버리고 추상으로 들어선다. 이는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모두 걷어낸 이후에도 남는 어떤 것, 즉 존재의 최소한의 상태를 향한 전환이었다. 이후 그의 회화는 무엇을 재현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끝내 남는가를 향해 수렴해 간다. 그는 작품의 해석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를 위해 현대 철학과 미학에 깊이 몰입해 왔지만 그 사유는 화면 위에 축적되기보다 오히려 사라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의미는 더해지지 않고 제거되며 기호는 강화되지 않고 희미해진다. 이 과정에서 그의 회화는 기호 이전, 의미가 발생하기 직전의 상태로 이동한다. 필획은 더 이상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해석되어야 할 이미지가 아니라 행위가 남긴 흔적이다. 반복은 축적이 아니라 제거이며, 행위는 표현이 아니라 비움이다. 이 점에서 그의 작업은 의도를 앞세우지 않는 무심, 혹은 무위에 가까운 회화로 이해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적막〉과 〈대화〉 연작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적막〉은 흰 화면 위에 놓인 먹색의 필획으로 이루어진다. 때로는 기호처럼 보이는 형상이 남아 있지만 그것조차 점차 소거되어 간다. 거의 비어 있는 듯한 화면 속에는 반복된 행위의 시간과 긴장이 응축되어 있다. 〈적막〉은 비워내기의 극한에 가까운 상태이다. 의미와 기호가 사라진 자리에는 설명할 수 없는 상태만이 남는다. 이 비워진 상태는 공허가 아니라 이후의 모든 가능성을 품은 장이다. 반면 〈대화〉는 보다 개방된 구조를 드러낸다. 강렬한 색채 위에 놓인 힘찬 스트로크는 이전보다 훨씬 큰 스케일과 에너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미공개 대형 신작들이 중심을 이루는데 이는 최근까지 이어진 그의 왕성한 작업의 결과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대형 캔버스를 다루며 그 안에 밀도 높은 에너지를 축적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확장은 덧붙임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비워진 상태 위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적막〉과 〈대화〉는 서로 다른 단계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에 놓인 두 상태이다. 비움이 극한에 이른 자리에서, 비로소 관계와 에너지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 변화는 확장이 아니다. 화면이 다채로워지고 역동성을 획득하더라도 그의 회화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린다는 행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어떤 상태, 그것이 그의 작업의 중심이다. After Gesture는 제스처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에 남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오수환의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그려졌는가가 아니라, 그리는 행위가 스스로를 비워낸 끝에 무엇이 남게 되는가이다. 이 전시는 형상의 잔여에서 출발해 기호와 의미가 사라지고, 끝내 필획만이 남게 되는 과정을 따라 전개된다. 관람자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더 이상 무엇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 화면, 그러나 여전히 강하게 존재하는 상태이다. 이 전시는 그림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반복된 행위가 스스로를 비워내며 도달한 자리, 그린 뒤에 비로소 드러나는 회화의 상태를 마주하는 자리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그린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남기는 일인가. 작가 소개 오수환(吳受桓, b. 1946)은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회화 작가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으며, 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한 바 있고 현재는 서울여자대학교 아트앤디자인스쿨 현대미술전공 명예교수이다. 작가는 가나아트(서울, 로스앤젤레스), Galerie Maeght(파리) 등 국내외 주요 갤러리에서 50여 회 이상의 개인전을 개최해왔다. 광주 비엔날레(1997), 상파울루 비엔날레(1983) 등 국제 비엔날레에도 초청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매그재단(생폴, 프랑스), 삼성문화재단(서울), 서울대학교미술관(서울), 서울시립미술관(서울), 파리시립도서관(파리), 후쿠오카시립미술관(후쿠오카)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3년에는 한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다.

모든 전시 정보에 대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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