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1등급
김시훈 개인전: 근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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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개
근린공원(近鄰公園)의 근린근경(近鄰近景) 세상을 보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나아가는 방식, 그리고 부분에서 부분으로 건너뛰는 방식. 우리는 대개 전자에 익숙하다. 어떤 사물을 보기도 전에 이미 그것에 대한 이름, 쓸모, 위계를 마음속에 준비한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그의 직함을 먼저 듣고, 공간에 들어서기 전에 그 용도를 먼저 생각한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한 범주 안에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본다. 그러나 김시훈의 그림 앞에 서면 그 익숙한 순서가 조용히 무너진다. 방호복을 입은 형체들이 뒤엉켜 있다. 누군가를 붙들고 있는 것인지, 떠받치고 있는 것인지, 혹은 밀어내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바닥에 놓인 전자레인지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와 있으며, 전선 코드는 연결되지 않은 채 똬리를 틀고 있다. 배경에는 차가 한 대 서 있다. 이 장면은 사건인가. 일상인가. 긴박한가. 평온한가. 위험한가. 우스운가. 어떤 맥락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다. 보는 이는 이야기를 조립하려다 멈추고 그냥 그 자리에 잠시 머물게 된다. 그 머무름이 이 그림들이 처음으로 열어젖히는 문이다. 작가는 이것을 근린(近鄰)이라고 부른다. 가깝고 이웃한 것들. 그러나 그 친근함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의 것이 아니다. 작가가 말하는 근린(近鄰)은 작은 자극에도 즉각 반응하고, 구부러지고, 찌그러지고, 던져진다. 감정의 미세한 파동 하나에도 몸이 먼저 반응하고, 옆에 있는 것에 의해 형태가 달라진다. 그것은 인간이 오랫동안 자임해 온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옆에 놓인 제로 콜라 1.5리터와 같은 위상으로,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특별한 추락이 아니다. 그냥 거기 있던 것들과 나란히 같은 바닥 위에 놓이는 일이다. 이 평등은 냉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맥락을 걷어낸 자리에서 사물과 인간이 처음으로 대등하게 마주 보게 되는 일종의 해방이자 민망함이다. 작가는 그 민망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의미가 리셋되고 새로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그 틈새, 낯설음이 낯익음을 압도하는 바로 그 지점을 김시훈은 그림으로 붙들어 둔다. 방호복이라는 기능적 사물은 그 안의 신체와 함께 어떤 역할도 수행하지 않는 채 화면을 채운다. 전자레인지는 더 이상 음식을 데우는 기계가 아니다. 전선은 아무것도 연결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신의 목적으로부터 조금씩 유예된 상태로 거기 있다. 〈근린공원〉(近鄰公園)은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것에 대한 전시다. 공원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다. 집 근처, 길 옆, 아무 목적 없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 목적지가 아니라 사이에 있는 공간. 그러나 김시훈의 캔버스 안에서 그 평범한 근방은 서사가 증발한 채로 새로운 밀도를 얻는다. 그림들은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정합적이지 않은 세계의 조각들이 나란히 걸려, 전체를 설명하는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존재한다. 보는 이는 전체를 파악하려는 충동을 잠시 내려놓고, 부분에서 부분으로, 장갑에서 전선으로, 쏟아진 것에서 발끝으로, 그렇게 떠돌며 그림 안을 거닐게 된다.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질감과 형태와 색의 온도를 하나씩 통과하는 일. 그것은 공원을 산책하는 것과 닮았다. 어딘가에 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걷는 것. 그 걸음이 목적 없이 이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보다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가 더 또렷해진다. 그 산책이 다소 쑥스럽고 불편하다면, 아마도 그것이 정확한 감상일 것이다. 참여작가: 김시훈 출처: 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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