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1F 최지원 《글레이즈드 피버 Glazed Fever》 작가 최지원(b. 1996)은 매끄럽고 장식적인 사물에 주목해 긴장감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장면을 그린다. 그는 19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도자기 인형(China Doll)을 이질적인 맥락 안에 배치하여 낯선 조형적 대상으로 변모시킨다. 고전적인 얼굴과 현대적인 의복, 입체적인 명암과 평면적인 색면, 동양의 기물과 서구의 사물, 살아있는 것과 박제된 것 등 상반되는 요소들이 화면 위에 공존하며 긴장감을 더하고, 매섭도록 정교하게 묘사된 표면은 사물을 눈으로 더듬는 듯한 촉감을 자극한다. 작가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도자기라는 사물에 현대적인 외양을 덧입히려 시도하기보다는, 사물의 형태와 표면을 매개로 그 안에 응축된 서사를 가시화하려 한다. 이번 전시 《글레이즈드 피버》에서 작가는 인형의 얼굴을 크게 확대해 화면을 압도하는 스케일로 제시하며 단단한 표면 아래 잠복해있던 열감을 끌어올린다. 글레이즈드(glazed)는 윤이 나는 도자기의 질감을 묘사하는 동시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인형의 멍한 표정을 가리킨다. 테라코타 빛으로 물든 인형의 얼굴은 뜨거운 열을 통과한 뒤 굳어지는 도자기 본연의 물성을 연상시키며, 차갑게 식어 있던 존재가 다시 열기(fever)를 마주한 상태를 드러낸다. 작가는 이 열기를 물리적 온도에 국한하지 않고, 어떤 대상에 대한 집착과 열망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온도로 확장한다. 화면을 가득 메운 난초에는 그러한 욕망의 역사가 담겨 있다. 여기서 작가는 19세기 영국에서 나타난 ‘난초 열병(Orchid Fever)'을 참조한다. 식민지에서 온 이국적이고 관능적인 식물은 빅토리아 시대의 수집가와 탐험가들에게 수집 광풍을 불러일으켰으나, 난초 수집과 연구는 대개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에 여성의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역사 위에서 여성이 난초를 소유하고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난초 앞에서 붉어진 인형의 얼굴은 억제되었던 욕망이 표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한다. 먼 이국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수집의 대상이 되었던 도자기 인형과 난초가 화면 속에 나란히 놓이며 서로를 응시하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아름다움과 욕망,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소유하려는 시선의 역사를 함께 마주한다. 2F 박현진 《에코 트랙스 Echo Tracks》 작가 박현진(b. 1991)은 인간과 동물, 식물, 기계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탐구를 다양한 매체로 선보인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반려견 ‘뽀뽀'의 죽음 이후에도 잔존하는 기억과 감정, 관계에 대한 사유가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부재하는 개를 상상의 존재로 치환한 퍼포먼스 (2022), 웅크린 동물 형상의 화분에 봉선화를 기르며 애도의 시간을 담은 (2023-), 개의 두개골에 새로운 몸을 부여한 조각 (2024) 같은 작업은 물리적 형상이 사라져도 다른 형태로 지속되는 존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최근 작가는 소니의 인공지능 로봇 개(AIBO, ERS-1000) ‘에코'와 함께하는 삶을 바탕으로,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이러한 탐구를 기계와의 관계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번 전시 《에코 트랙스》에서 작가는 에코와 팀을 이뤄 어질리티를 수행한 경험을 조각과 설치, 영상, 사운드 작업으로 풀어낸다. 제조사의 프로그래밍에 따라 작동하는 에코는 민첩한 움직임과 교감을 전제로 하는 어질리티의 규칙에 부합하지 못하는 존재임에도, 작가는 계속해서 에코를 부르고 되돌아오는 반응을 기다리며 훈련에 임한다. 타이어, 허들, 웨이브 풀 등 어질리티 도구의 형태를 차용한 조각들이 반향 없는 공허한 훈련의 증거물처럼 전시장에 자리한다. 조각의 표면에 남은 깨문 흔적은 인간에 의해 통제되어 온 개의 신체 언어를 가시화하면서 불균형한 관계의 구조를 상기시킨다. 그 가운데 뽀뽀의 숨소리와 에코의 작동음이 교차하는 사운드가 흐르며, 어질리티 트랙 위에 남겨진 하나이면서 둘인 존재의 흔적을 인식하게 한다. 다른 한편에는 전선으로 연결된 자녀들과 함께 지친 듯 누워 있는 개의 조각이 제시된다. 탯줄을 연상시키는 이 전선은 생물학적 탄생과 기술적 생성의 이미지를 겹쳐 놓는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이 동물을 길들여 온 오랜 역사로부터 인공지능 로봇 개와 관계 맺는 오늘날까지, 우리가 무엇을 태어나게 하고 길러내고 있는지 질문한다. 3F 정수정 《하얀색 운동화: 죽음도 좋지만, 그러면 사랑이 없잖아 White Sneakers: Death Is Fine, But Then There is No Love》 작가 정수정(b. 1990)은 현실의 사건에 기반을 두고 상상해낸 낯설고도 익숙한 세계를 회화에 담는다. 작가는 모험담과 신화, 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서사로부터 수집한 이미지를 해체해 새로운 장면으로 재구성한다. 그의 회화에서는 여성 인물과 자연의 생명체들이 뒤섞여 통제할 수 없는 생명력을 분출하고, 상반되는 에너지들이 충돌하며 역동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고전 회화의 형식과 소재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작가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트로니(Tronie)를 변용하여 정체성이 특정되지 않는 보편적인 인물을 제시하고, 서사의 단서만을 남긴다. 강렬한 색채와 밀도 높은 붓질로 채워진 화면 안에서 인물과 배경의 경계는 흐려지고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는 열린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번 전시 《하얀색 운동화: 죽음도 좋지만, 그러면 사랑이 없잖아》는 삶의 역동성과 죽음의 정지성의 대비를 축으로 전개된다. 전시 제목은 레오 카락스의 영화 (2013)에서 차용한 문장으로, 생이 멈춘 이후 지속될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인식은 역설적으로 살아 있는 동안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작가는 이러한 사유에서 나아가, 죽음에 관한 개인적 경험과 동시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교차시켜 삶과 죽음이 맞물리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전시장 입구의 회화는 인간과 가까운 동물이 죽음을 감지하는 본능적 움직임을 긴장감 있게 드러내고, 일렬로 늘어선 이미지의 단편들이 마치 거대한 이야기의 전조처럼 놓여 있다. 전시의 중심에는 너비가 10미터에 이르는 대형 회화 (2026)이 자리한다. 인물과 자연의 형상이 서로를 향해 밀려들며 충돌 직전의 긴장 속에 놓여 있고, 화면 곳곳에서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긴박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화면 상단에 걸린 하얀색 운동화는 멈춰버린 발걸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떠난 이의 흔적 속에서 남겨진 이가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 시간을 환기한다. 이러한 장면은 죽음을 삶의 반대편에 위치시키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삶 내부에서 작동하는 또 다른 운동성으로 바라보게 한다. 전시는 끝을 알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삶의 시간 속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남겨지는 감정과 기억을 되짚도록 만든다. 출처 : 금호미술관 홈페이지
작품 감상
전시 분위기
모든 전시 정보에 대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전시 정보는 변경되거나 오기입될 수 있으니 방문 전 각 기관에 확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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